Y-Review

대상화된 정물(靜物)의 감각을 추상하다

천미지 『몸』
1,134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20.02
Volume EP
장르
유통사 포크라노스
공식사이트 [Click]
모든 존재와 그것의 지체는 대상인 동시에 주체다. 그중에서 인간의 '몸'은 탈신체화한 이성과 사고 중심의 근대 철학을 비판하는 이들에 의해 현대 철학의 주요 개념으로 대두함으로써 뒤늦게 주체의 지위를 찾았다. 반면에 여성의 몸은, 몸 철학이 인기를 끌었던 20세기를 지나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것이 여전히 주체보다 대상으로 더 익숙하게 소비되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전작 『Mother And Lover』(2019)에서 어머니의 존재 및 그와의 관계를 통해 자아와 자신의 성애를 곱씹었던 천미지는 이번 디지털 EP에서 좀 더 관계의 부분적인, 그러나 핵심적인 맥락을 드러낸다. 바로 자신의 몸, 억압된 여성의 몸으로서 느끼는 것들을.

특정한 가치 존재를 대상으로 대하는 인간의 행위는 크게 네 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획득'(대상을 얻으려는 행위)과 '소유'(대상을 얻은 후 간직하려는 행위), '증여'(대상을 타인에게 주는 행위)와 '폐기'(대상을 누구도 갖지 못하게 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어떤 과정에서든 주체가 지니는 욕망의 크기나 주체의 욕망에 부응하는 대상의 반응에 따라 여러 종류의 태도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탐욕과 탕진, 중용, 절제와 인색 같은. 그리고 오리지널 2곡과 리믹스 3곡을 포함한 『몸』은 절묘하게도 위 네 가지를 모두 다루고 있다.

첫 트랙 「Everyone So Loves Me!」에서 그는 모두가 획득을 갈망하는 철저히 객체화된 '몸'을 노래한다.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몸을 원하는 뭇 남성들의 사탕발림과 노골적인 고백에 화자는 의구심을 표하면서도, 갑작스레 내리는 비에 그는 어찌할 도리 없이 흠뻑 젖는다. 「몸」을 통과하며 화자의 반감과 혼란은 더욱더 가중된다. 가사 속 “너”와 “나”는 몸을 함께 가졌지만, 왠지 나의 몸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너와 “키스를 '나누지만'”, 너는 “증거를 '남긴다'”. 이와 같은 비대칭적 소유 관계 속에서 오로지 “내 몸(만)이 찢어지고, 점차 시들어간다”.

원곡 「I Want to Be Your Mother」이 연인에게 어머니가 되어 자신을 바치고자 했던 화자의 내재한 심정을 대변한다면, 본작에 수록한 넷갈라의 리믹스 버전은 높고 가늘게 재조정된 톤과 급박해진 분위기를 통해 오독과 변절로 인해 야기된 화자의 불안과 혼란을 외면화한다. 키라라는 훨씬 적극적인 분절과 해체를 시도한다. 처연하고 슬픈 감정을 머금었던 '도피'가 훨씬 가볍고 자조적인 그만의 주체성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두 리믹스곡이 '객체화된 몸'이라는 EP의 키워드에 초점을 둔 변용에 가깝다면, 「Girl : Piano Shoegazer Remix」는 일전의 획득·소유·증여·폐기를 거친 전체 서사를 돌아보고, 그것의 정서를 갈무리하는 재해석의 역할을 담당한다. 동시에 갈망과 획득으로의 회귀를 의미하기도 한다. 뜻밖에 도입부의 차분한 서정과 우리말로 재녹음한 가사의 존재, “그녀의 황급한 떠남”(「도피」)으로 매조졌던 『Mother And Lover』와 다르게 본작이 “the girl you most hated in the world/ will be the most important in your life and you'll get it/ she just tried to get thing right”(「Girl : Piano Shoegazer Remix」)로 끝을 맺는 것 모두 그 까닭이다.

천미지가 감각한 몸의 인상은 구조적, 의미론적으로 충만한 그만의 표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이전보다 훨씬 얇고 붕 떠 있는 그의 보컬과 거친 질감(「Everyone So Loves Me!」) 및 육중한 무게감(「몸」)을 오가며 여전히 그 지향점을 숨기지 않는 록킹한 밴드 사운드, 그리고 새로 가세한 각종 이펙트의 병치라는 세 가지 트랙을 통해 환상적 재미와 기괴한 불안을 낳는다. 천미지의 1차 감각이 낳은 세계, 곧 2차 감각은 청자에게 요묘한 재미와 혼란을 함께 주지만 동시에 그 자체로 새로운 물음이자 우회적인 비판이 되기도 한다. 앨범 표지의 아트워크 속에서 카메라를 지루하고 따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천미지의 표정과 그 뒤로 보이는 배경의 놀이기구 이미지가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본 EP의 사운드가 갖가지 낯익으면서도 조악한 놀이기구(attraction)로 가득 찬 놀이동산의 작위적 쾌를 종합하고 있는 것 또한 필연이다.

마치 학문의 영역에서 여성의 몸, 몸의 경험, 섹슈얼리티 등이 오랜 시간 전면에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대중음악의 영역에서의 그것 역시 오로지 주체적인 성애와 섹슈얼리티 등 단편적인 측면에서만 다루어져 온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추상적이고 상징적으로나마 주제와 소재를 대하는 진지한 시선, 혼란스러운 감정, 자전적 이야기를 구조적으로 잘 녹여낸 『몸』의 존재가 무척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 정체성을 구성하는 문제와 관련해 단지 주체의 욕망이 아닌 타자의 욕망과 깊은 연관성을 지닌 채 무력하게 대상화되는 기제를 놀이기구 및 이와 관련된 표상으로 나타낸 비유도 탁월하다. 무엇보다 대상화하는 주체, 대상화된 객체 사이 시점을 초월한 오리지널 트랙의 단절된 물음과 리믹스곡의 변화된 관계 속에서 확고한 구조를 갖춘 사유는 분명 새로운 상상과 이해를 낳고 있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Everyone So Loves Me!
    천미지
    천미지
    천미지, 피아노슈게이저
  • 2
    천미지
    천미지
    천미지, 피아노슈게이저
  • 3
    I want to be your mother : Net Gala Remix
    천미지
    천미지
    넷갈라
  • 4
    도피 : Kirara Remix
    천미지
    천미지
    키라라
  • 5
    Girl : Piano Shoegazer Remix
    천미지
    천미지
    피아노슈게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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