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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이정표를 세우다 : 크럭스 『Who Defines What’s Divine』

크럭스 (Crux) 『Who Defines What’s Divine』
1,259 /
음악 정보
발표시기 2021.11
Volume 2
장르 헤비니스
유통사 사운드리퍼블리카
공식사이트 [Click]
(편집자 註. 본 글은 음반 라이너 노트의 일부를 수정한 버전입니다.)


20년의 무대, 7년의 스튜디오

중간에 10년여 휴지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1989년 결성된 밴드가 2021년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크럭스는 존중받을 필요가 있다. 물론 오랜 시간 활동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밴드의 실력과 비례하는 것은 아니며, 높은 평가나 존경을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크럭스는 더더욱 존중과 주목을 받아 마땅한 밴드다. 한국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프로그레시브 록 성향의 「Time Travel」을 『Friday Afternoon III』(1990)에 수록하며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쌓아 올린 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헤비메탈의 다양한 스타일과 연주를 연마할 뿐 아니라, 이를 자기 세계의 일부로 소화하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자리에 안주하지 않으며 발전해나가는 밴드를 30여 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음악팬에게 큰 행운이다.

다만, 이 밴드의 정규 음반이 너무도 귀하다는 사실은 크럭스의 라이브 활동을 보면 볼수록, 그만큼의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지점이다. 레코딩 데뷔 24년이 지나서야 첫 정규 앨범 『Elapse with the Relapse』(2014)을 발표했을 만큼 크럭스의 음반 속도는 더뎠다. 심지어 『Elapse with the Relapse』가 크럭스의 에너지 넘치는 라이브과 비교해 아쉬운 내용을 담은 결과물이었다는 사실도 쓰렸다. 헤비메탈의 역사는 정교한 곡과 연주력 못지않게, 고출력의 연주가 만드는 찌그러진(distorted) 소리를 녹음·믹싱·마스터링을 통해 음반이라는 매체가 품어낼 수 있는 소리로 재구성해내는 과정의 연대기다. 이를 생각한다면 『Elapse with the Relapse』는 크럭스가 활동 경력에 비해 스튜디오 경험이 미숙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7년만의 신작 『Who Defines What’s Divine』는 20년이 넘는 무대 경험에서 키워온 정교하고 묵직한 연주력과 스튜디오 사운드에 대한 그동안의 고민이 한껏 묻어나는 작품이다. 그것도 매우 굳건하고 단단하게 빛나는! 감히 말하건데 한국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새로운 이정표 같은 음반이다. 크럭스의 시작부터 함께 해 온 드러머 신영과 키보디스트 최우순이 여전히 밴드를 지키고 있으며, 2000년 재결성 이후 지금껏 밴드와 함께 해 온 보컬리스트 세바스찬(서세웅)과 베이스 임현수 역시 라이브로 굳어진 소리의 근육을 자랑한다. 여기에 오랜 시간 라이브 세션이었던 황주희가 정식 멤버로 가입하여 키보드 오케스트레이션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가장 최근에 합류한 기타리스트 김인중은 레코딩과 믹싱까지 담당하며, 2021년의 크럭스가 남긴 발자국을 음반에 새기는 역할을 담당했다.

 
신성함이 무엇인지 누가 정의할 것인가?

인트로 격인 「Kingdoms Will Fall」을 제외하고 7곡이 수록된 음반은 Dream Theater나 Savatage 같은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외피 안에 정통 헤비메탈은 물론, 스래쉬 메탈에서 서던 록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적 요소가 아무렇지 않게 녹아있다. 워낙 크럭스 스타일로 잘 마감되어 있기에 장르 사이의 이음새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드라마틱한 전개나 스산함과 냉정함을 강조하는 모습에서 King Diamond의 뉘앙스도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King Diamond의 음악 역시 고딕과 쇼크록의 성향이 묻어있는 어두운 드라마를 나름의 프로그레시브적 접근으로 풀어내는 음악을 들려주고 있기도 하다.

황주희의 키보드 솔로와 신영의 드럼 연주가 귀를 사로잡는 「Kingdoms Will Fall」의 화려한 인트로의 지원 속에 등장하는 「The Empire of Two Suns」는 기타 리프와 드럼 스피드에서 이전까지의 크럭스와의 차별이 느껴진다. 곡 마다 조금씩 편차가 있지만 드럼 레코딩, 특히 킥과 스네어, 탐탐이 시원시원하게 뻗어 나오면서도 탄력 있는 사운드가 일품이다. 킥과 보조를 맞추면서도 존재감을 자랑하는 베이스 연주, 직선적인 리프와 짧지만 잘 짜인 레가토 연주를 들려주는 기타 솔로 역시 크럭스의 성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다양한 스타일을 들려주는 보컬리스트 세바스찬의 퍼포먼스는 잊기 힘들다. 심포닉 성향을 강조했다면 화려한 합창을 들려줬을 코러스에서 들을 수 있는 팔세토는 특히 놀랍다.

세바스찬의 보컬 스타일은 Nevermore의 보컬리스트 Warrel Dane이 들려주던 다양한 캐릭터를 오가는 드라마틱한 모습처럼 변화한다. 팔세토를 동원한 고음, 찢어대는 샤우트, 묵직한 그로울링, 서던 록 아티스트들처럼 허스키한 저음으로 읊어대는 장면까지, 개성 넘치는 세바스찬의 보컬은 밴드의 핵심이다. 보컬 믹싱에서 이러한 존재감을 좀 더 부각시키지 못한 게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다. 그의 활약 덕분에 크럭스는 다른 밴드와 차별화된 자신들만의 색깔을 가지게 된다.

정통 헤비메탈을 연상시키는 「Chroma Christ」는 Ozzy Osbourne의 그 유명한 「Revelation (Mother Earth)」를 현대적 사운드로 다시 손 본 듯한 유려함과 그 안에 담긴 염세적인 성격이 가사부터 곡, 창법까지 깊이 느껴진다. Megadeth의 정교한 리프가 연상되는 「Passive / Aggressive (Paradoxical Ballet)」는 드럼이 이끄는 독창적인 변박과 그 사이를 파고드는 얼터네이트 피킹의 베이스 연주가 일품이다. 여기에 Marty Friedman과 김도균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스케일을 펼치는 기타 솔로, 기타 솔로를 받는 키보드 연주까지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하고 개성 있는 연주가 이어진다.

앨범에는 10분이 넘는 시간을 자랑하는 두 편의 대곡이 자리하고 있다. 프로그레시브 메탈 팬이라면 반드시 경청을 권한다. 두 곡 모두 다양한 스타일로의 변주가 천의무봉의 솜씨로 진행된다.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하는 「CRUXified」는 밴드 이름을 이용한 곡으로, 다양한 장르를 밴드의 십자가 안에 담아내겠다는 음악적 욕심처럼 들린다. 쩍쩍 달라붙는 킥 드럼과 날렵한 탐탐 연주 위로 밴드의 역량이 집결된 느낌이다. 이 곡이 특히 드라마틱한 것은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것처럼 다양한 보컬을 구사하는 세바스찬의 활약 덕분이다. 그 사이로 1980년대 Ozzy Osbourne 음악과 구분되는 새로운 세계로 발 딛게 해 준 명곡 「No More Tears」를 연상시키는 키보드와 블루지한 맛이 일품인 기타 솔로가 ‘언밸런스의 밸런스’가 무엇인지 들려준다.

또 하나의 대곡인 「One More Last Mistake」는 역설적인 제목처럼 곡 내용도 이중적일 뿐 아니라 묘한 장치들이 숨겨져 있다. 이를테면 첫 가사 “Knowing oh so well how it will end(어떻게 끝날지 너무 잘 알지만)”는 발음만 들으면 “No remorse how it will end (어떻게 끝나도 후회하지 않는다)”로 들릴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첫 구절부터 시작된 여러 의미의 층위로 쌓인 함의는 reFLECtion(회상), reVELATION(깨달음), reSIGNATION(체념), rePETITION(반복)으로 구성된 소제목의 흐름 속에서 주제를 점차 명료하게 만들어간다.

마지막 실수를 또 반복하는 인간의 존재를 그리는 웅장한 대곡으로 앨범을 마치면서, 크럭스는 신성함이란 결국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는 인간의 진보에 있다고 외치는 듯 하다.
 

이정표를 세우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일 것이다. 귀 밝은 이들은 몇몇 악기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대목이 못내 아쉽게 짚힐 것이고, 어떤 이는 공간감의 부족 (다르게 말하면 믹싱에서 악기 위상 조정의 아쉬움, 소스 녹음의 앰비언트 문제 등) 이 안타까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짚어야 한다. 『Who Defines hat’s Divine』은 그간 비슷한 장르를 추구했던 적잖은 한국 밴드들이 보여준 한계 – 레퍼런스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곡 쓰기, 메인 멜로디의 서사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성, 연주력의 한계 등을 훌쩍 뛰어넘은 수준을 자랑하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앞서 밝힌 아쉬움은 이 앨범에 담긴 연주의 빼어남과 개성을 더 완벽한 프로덕션으로 구현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지, 밴드의 부족을 탓하는 게 아니다. 아마도 앨범을 듣게 될 헤비메탈 팬들도 공감하는 대목이라.

크럭스는 한국 프로그레시브 헤비메탈의 새로운 이정표를 스스로의 힘으로 세웠다. 크럭스에게 남은 과제는 ‘한국’이라는 수식어를 떼어내는 일이라 보인다. 그리고 스스로 학습을 통해 과제를 끝낼 시간이 다가왔음이 보인다. 그 증거가 바로 『Who Defines What’s Divine』이다.


Credit

[Member]
Vocal : 서세웅
Guitars : 김인중
Bass : 임현수
Drum : 신영
Keyboards : 최우순, 황주희

[Staff]
Produced by 크럭스
Co-produced & Mastered by 김재만@까미스튜디오
Engineered & Mixed by 김인중 and 크럭스
Recorded at Recording 닥터스튜디오

Track List

  • No
    곡명
    작사
    작곡
    편곡
  • 1
    Kingdoms Will Fall
    서세웅
    황주희, 크럭스
    -
  • 2
    The Empire Of Two Suns
    서세웅
    신영, 크럭스
    -
  • 3
    Chroma Christ
    서세웅
    크럭스
    -
  • 4
    Passive / Aggressive (Paradoxical Ballet)
    서세웅
    크럭스
    -
  • 5
    CRUXifed
    서세웅
    크럭스
    -
  • 6
    Kayla's Despair
    서세웅
    신영, 크럭스
    -
  • 7
    Critical Mass
    서세웅
    김인중, 크럭스
    -
  • 8
    One More Last Mistake
    서세웅
    크럭스
    -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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